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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음악]
00:00:00
으
00:00:00
[음악]
00:00:04
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궁 차례 전란으로 b 페이징 인생 청나라의 막대한
00:00:10
조금 까지 바쳐야 했던 규정 인근
00:00:12
난국을 타개할 적임자로 김 6 을 지목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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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유근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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파탄난 국가재정을 안정시킬 요 채 도로
00:00:22
대동법을 지시한다 채 너 충청도와 전라도 에서도 태동 법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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즉시 시행해야 허 옵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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가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마침내 정승혜 오른 청렴한 관리 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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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당파를 초월해 떤 실천적 개혁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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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음악]
00:00:48
[박수]
00:00:50
[음악]
00:00:52
결국은 이제 김 6에 실천 대위 지 하고 또 그 집요한 설득 그런 것에
00:00:58
의해서 대동법 2cm 합니다
00:01:01
학자 이면서 정통한 경제 관리에 어떤 김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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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조선시대 최대의 기업으로 꼽히는 대동법 시행에 온몸을 바친 인물이다
00:01:11
[음악]
00:01:18
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
00:01:21
5
00:01:22
유우 세차기 응 자
00:01:26
6월 을 쭉 싸
00:01:30
균 14세 줘 고 2 정부 영웅의 정 경험 일단 의종 어긴 조상의 영정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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위패를 모시고 온 구제를 지민 다 그 13 청춘들이 길이는 이유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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조선 중종 엣지 3김 왼 부 봉 11 쥬논
00:01:53
어
00:01:57
선생은 5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의 궁 난게 9 모를 1돌 가난한 농민
00:02:03
으로 살다가 뒤늦게 관직에 진출 하여 30여년만에 영의정에 오른 청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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빕니다
00:02:10
상재 우모 사상 수집 사안에 전후 보호 1전 1580년 에 태어나 셔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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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658 전에 돌아가셨습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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예 선 세운 조기 중심이 문신 이어 학자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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홍 관 김 육선생은 학자이자 정치가로 안민 북의 정책 목표를 달성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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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제관료 땅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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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제정책 의 파워 란 시점을 갖고 있어 충청도 관찰사 부재 집중 백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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수탈의 방법이었던 0 불법을 피지 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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미 퍼로 대납한 은 대동법을 1651년 에는 충청도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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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657 년에는 전라도 연안 지방에 일을 시켜 했습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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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생은 전란으로 흉해 진 민심을 나 오르고 조금과 흉년으로 공금 해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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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가재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대동법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장본인이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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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 우리 쭉 사람의 차 나를 구하고 백성을 구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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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비 대한 분리 비 때문에 정 우리 후손들의 영광으로 생각해야 이렇게
00:03:18
그렇지만 속치마 모피로 오세요 1 이제 게임을 받으시면 응봉 오실 일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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합방 접하게 됐어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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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 평 구 마울 야산의 김 6선 생의 일가의 묘지가
00:03:31
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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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생은 중종 때 기묘사화 로 조광조와 함께 처형된 김식 의 4대 손이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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중종 반정 으로 고위 관직에 오른 김 식은 조광 적 기준 등 신진 사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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과 함께 연상 그랩 배정을 기억하던 중 09 세력의 모함을 받고 전개
00:03:48
있어 물러났다
00:03:50
훗날 유림들의 상사로 기묘 명현 으로 복원 되었지만 그의 자손들은 당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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유일한 등용문이 어떤 과거 시험을 볼 수 없었다
00:04:00
후문이 이제 문 의 02 신데 그 잠복 에 고조 할아버지가 되시겠어요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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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아버지 이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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에 가계도를 그려 놓은 건데 여기서 따지면 잠 고 비우시고
00:04:12
그 다음에 그 아디는 자산 열사 식 암석 자주 차에서 1분이 3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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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추입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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평 구 마을에서 15km 쯤 남한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면 실학박물관 에
00:04:24
닿는다
00:04:25
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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영 정조 시대의 문화적 중기 를 이끌었던 신학자들이 그 유품 들과 함께
00:04:33
관객들을 맞이하는데
00:04:34
[음악]
00:04:37
김 육선생은 실학박물관 에서도 부감 미를 추구한 정치가로
00:04:42
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
00:04:45
선생은 특히 충청도와 전라도의 대동법을 신께 한 인물로 백성의 부담을
00:04:50
줄이고 국가의 재정을 넉넉하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
00:04:56
국가 재정의 굉장히 중요한 그 비중이 컸던 지역이 바로 충 첨 다고
00:05:01
전라도 입니다
00:05:02
여기서 대동 법이 시행되지 않으면 은 어 그 제도적인 효과를 크게 기대할
00:05:07
수 없는 거죠
00:05:08
아무래도 어 충청도 전라도 쪼금 이 땅 가진 부자들이 많았고 어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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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람들이 좀 저항을 했다고 봐야 되겠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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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렇지만 결국 은미 글 잘 시행을 하고 나니까 어 그럼 불만도 가라앉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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듣고 다들 그 대동 법이 좋았다 라고 이구동성으로 얘기를 하게 됩니다
00:05:28
충청도에서 대동법을 정착시키기 위해 김 6선 승인 직접 집필한 호서대 돔
00:05:34
3월
00:05:36
대동법 을 시행하는 취지와 이를 관장하는 조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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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동 3의 부가 와 진수 측의 그리고 조정의 상납하는 쌀 즉 3 남미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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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방재정 했을 유치해 관리 방법 등이 수록된 일종의 시행 스위치 기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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뭐 선생의 후손들이 1682 년에 금속활자 로 가능한 잠복 집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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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동 3억에 서문이 실려 있는데 당시엔 왜 대동 법이 필요했는지 9
00:06:08
그리고 대동법을 어떻게 시인 해야하는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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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혁 선생의 정책 의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 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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원하는 바는 소원 즉 존심이 젊 더 이 마음가짐을 바로 하고
00:06:24
주사 2실 그 일을 하는데 있어서 실로 싸게 타 예 근데 실사구시를
00:06:31
하겠다 이 거죠 그래서
00:06:33
절여 위해 민 아 물자로 앞에 쓰고 백성을 살아간다
00:06:37
그 다음에 관 요에 박 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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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때 언제요 역을 이제 줄이고 부담을 줄인다는 거죠
00:06:45
세금 줄인다 는 거죠 그러면서 하시는 헛된 것으로 치닫고 먼 것 같아요
00:06:51
랑 것으 에 힘쓰고 이제 부문 어떤 이야기든 뜬 그 문장들을 숭상하는 것
00:06:59
그런거 하지 않겠다 그런 얘기를 하고 있어요 여기서 이제 어 든 그 김
00:07:05
6에 시작 때 적인 면이 드러나는 거죠
00:07:08
음
00:07:09
[음악]
00:07:11
경기도 남양주시 삼패동 정부 마을에는
00:07:15
잠 곡 김 6선 생 과 그의 아들 김 좌 명 의 신도비가 있다
00:07:19
[음악]
00:07:20
선생을 예주 판세 총 고했더니 겸 서기 비문을 지었는데
00:07:25
김 유 기 대 동 법의 얼마나 애착을 가졌고 또 어떤 자세로 추진 했는지
00:07:30
빼곡이 새겨져 있다
00:07:33
현명하고 어 진정 숨김 유기 대동 법으로 경 3 재미 4 뜻을 이루었지만
00:07:38
그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도 표현돼 있다
00:07:45
[음악]
00:07:49
바이아 으로
00:07:50
대동법 논의가 가게 이루어지자 비방이 가게 이렇다
00:07:54
그러나 김 육선생은 산처럼 우뚝하게 흔들리지 않아 마침내 그 시련을
00:08:00
보았다
00:08:01
반대 세력은 제부 가지로 얘기할 수 있죠 이념적으로 반대하는 세력이 있고
00:08:05
실제로 이해관계 얽혀서 반대하는 세력이 있을 수 있죠
00:08:09
또 이게 뭐 결국 결합되어 있을 수도 있고요 어 여기에 대해서 이제
00:08:12
끊임없는 설득을 시도합니다 그리고 이제 손해본 산 물론 있겠지만 이것들이
00:08:17
그렇게 생각 만큼 이렇게 아 소리보다 훨씬 그 득이 많다 라는 것을 이제
00:08:22
보여줘야 되는 거죠 그래서 이걸 시행할 때 일단 먼저 단계적으로
00:08:27
충청도에서 먼저 시행하고 이 성공을 바탕으로 또 그 다음 단계
00:08:31
[음악]
00:08:34
그렇다면 손 생을 이토록 집착하게 만들었던 대동 법은 과연 무엇일까
00:08:40
[음악]
00:08:43
조선의 조세 제도는 조용 조에 짐 3 채 길을 따르고 있었는데
00:08:48
양 전에 부과하는 토지 3 와 사람에게 부과하는 유역 그리고 겸 물을
00:08:53
거둬들이는 곡물 3 로 나뉜다
00:08:55
이 가운데 부담이 가장 컸던 국물 세제를 개 업계 백성 들의 조세 부담을
00:09:01
덜어주고 국가재정을 안정시킨 것이 바로 대동 법이다
00:09:08
당시에는 지역의 특산물을 세금으로 징수 했는데 형편과 관계없이 귀한
00:09:14
특산물을 구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
00:09:17
어 물건 값에 몇 십 배나 더 올려 받아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방나 베페
00:09:22
다니 측면 하기도 했습니다
00:09:24
그래서 이러한 박람 의 폐단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대동법 도입을
00:09:29
주장하게 됩니다
00:09:31
[음악]
00:09:35
지방 특산물을 현물로 거둬들인 다는 것은
00:09:38
품질을 검사는 관리에게 는 점토의 권한이 생긴다 는 의미인데 이 때문에
00:09:44
곡물을 대신 납부해 주는 방 납 업자와 행정 관료 사이에 부정한 결탁
00:09:49
이행했다
00:09:50
[음악]
00:09:54
또 하나의 문제점은 오면은 그 예가 부당 호당 이게 부가 되거든요
00:10:01
그러다 보면 잘 사는 집은 좀 그런 것 부단히 상대적으로 부담을 안
00:10:06
느껴지는데
00:10:07
못사는 지금 그게 엄청난 부담이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좀 부 공표한 거죠
00:10:12
가구당 하지 않고 경작지 경작지 더 많은 사람은 많이 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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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작지가 저는 3 접게 되는 그런 식으로 해서 조세 형평성을 굉장히 개선
00:10:20
시키는 거죠
00:10:23
가구당 부과 에서 9년 별로 거둬 드렸던 국물 쇠를 개편 해서
00:10:28
부과 대상을 가구 해서 놈 토록 납부 대상 물품을 특산 불에서 쌀로 바꾼
00:10:33
것이 대동법 의 골자 바
00:10:35
[음악]
00:10:37
아울러 필요할 때마다 거둬 드렸던 징수 책이 를 매년 봄 가을 두 차례만
00:10:41
걷어 드리도록 법을 정해 국가재정의 예결산 개념을 도입한 것도 대동법 의
00:10:47
핵심이다
00:10:48
근데 제공 물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권력이 있어야 그 그 과정에
00:10:53
개입할 수 있거든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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내가 주로 국물과 관련해서 그 개입되는 사람들이 그게 왕실이 라든지 또
00:11:00
거의 완료된 지 이런 사람이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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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대 동법 이 놀라운 건 뭐냐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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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가의 예산의 몇 배에 해당하는 어떤 이권과 그 이권과 관련된 최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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권력을 국가의 정상적인 논의 와 정책을 통해서 정리해야 한다는 거예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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9 테트 상황이 아닌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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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기도 가평 옥은 청평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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지금은 소드로 바뀐 이곳에 김 6 선생의 흔적이 남아 인당 으
00:11:35
청평 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잠 0 녹 잠근 김 6선 생을 지칭하는 혹 즉
00:11:43
별칭이 어따
00:11:44
[음악]
00:11:48
일단 물이 1호 이렇게 흘러 왔어요 그러니까 이 인들이 허락되어 초 뭐
00:11:53
이렇게 글로 여자머리 자비의 요기가 예 괴물의 자석 잠긴 방의 해서 제가
00:11:59
그걸 창곡동 이라도 비행할 수도 크래커 같은 그 그런데
00:12:03
3 독선적이고 써줘야 뭐 그 혼란 운제 이 동네와 사니깐 날 참 독이라고
00:12:09
된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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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 육선생은 성균관 유생 으로 법을 쌓았던 중 광해군 의 복종을 피해
00:12:16
이것 가평으로 낙향해 10년 동안 은거 했다
00:12:20
잠 곡 이라 불리웠던 마을에 터를 잡고 순수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
00:12:26
아
00:12:29
가평의 남아 있었던 또 하나의 뚜렷한 흔적 잠 곡선
00:12:34
숙종 때 가 병의 유생들은 이곳에 서원을 짓고 잠 걱 선생의 유지를
00:12:39
받들어 쓰나
00:12:40
대원군 의 서원 철폐 령으로 쓰러졌다
00:12:45
잠 곡선을 복원하여 선생의 개혁 정신을 오늘 이 시대에 투영 시키려는
00:12:51
노력이 수십여 년 거듭되고 있다
00:12:54
사실은 지금 고증이 안되서 어디인지는 정확히 모릅니다
00:12:58
그 분의 정신을 기릴 수 있는 시스템 그것 서원이 필요하다고 생각을
00:13:02
합니다 그래서 그 서원을 다시 건립 함으로써 그 분의 어 어 그 분의
00:13:07
정신을 고대로 이어갈 수 있는 그런 어떤 터전을 하나 만드는 게 가장
00:13:13
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
00:13:18
청소년기의 조부모와 양 7 모두 여긴 선생은 20 6살이 되던 해
00:13:23
천신만고 끝에 과거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입문했다
00:13:28
때마침 광해군 의 국정이 시작되었고
00:13:31
김 요게 폈을 길은 암담했다
00:13:37
[박수]
00:13:40
[음악]
00:13:42
식솔들을 모두 이끌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가평으로 낙 청한 김 6을
00:13:47
스스로 농사짓고 수출 부어 팔며 가족의 생계를 꾸렸다
00:13:53
[음악]
00:14:01
야간 통행금지가 불리면 김 6에 수칙에 가 가장 먼저 동대문을 통과했다는
00:14:06
기록이 전한다
00:14:10
보통 양반들이 낳게 한다고 해도 잘 자는 처갓집 이나 부모님 식으로
00:14:15
내려가는 거지
00:14:17
자기의 결단에 의해서 자기의 노동으로 먹고 살겠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그
00:14:22
낙향 을 하는 경우 많지 않거든요
00:14:25
그냥 농민이 돼서 상 거에요 그리고 농민으로 죽을 거라고 생각을 했던
00:14:29
거예요 그러니까 그 때의 경험 이라고 하는게 그래서 그 양반의 그
00:14:34
정체성에 깊이 각인이 된거죠
00:14:37
[음악]
00:14:40
[박수]
00:14:42
선생은 낙향한 지 2회 가지나 잠 곡 의사나 리의 세 칸짜리 띠 집을
00:14:47
지었는데
00:14:48
회 정당 이라 했다 5 김유근 그 삼양 문의 관직에 오르면 도를 행하고
00:14:55
그렇지 못하면 은거 한다 는 공자의 가르침을 따르겠다 고 썼다
00:15:01
낮에는 밭을 갈고 나무 하면서도
00:15:04
늦은 밤까지 책 읽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
00:15:11
매일 한 편씩 글을 짓고 폼을 팔아 생계를 마련했으며
00:15:17
썩은 풀을 태워 걸음을 스엠 알씩 만드는 일과를 지켰다고 한다
00:15:23
특히 수시로 바깥에 나가 호산 법으로 전 답에 측량 수를 익혔다는 기록도
00:15:29
있다
00:15:31
아 lee
00:15:33
선생은 잠 곡에서 마을 사람들과 어울려 10년 동안 농민으로 살았고
00:15:38
농촌의 실상을 소상히 파악할 수 있었는데 군 날 대동법을 추진하는 강력한
00:15:45
원동력이 된다
00:15:46
[음악]
00:15:52
으
00:16:00
잠 곡의 음 거지 에는 심심치 않게 그의 동료들이 찾아와 정담을 나누었다
00:16:05
으
00:16:10
으 날아라 어제보다 했습니다 아 알았습니다
00:16:15
으
00:16:18
성균관 유생 시절 선생은 이미 동료들에게 학문과 인품을 인정받았고 초야에
00:16:23
묻혀 많은 책을 읽었기에 그들과의 교류가 훗날 관직에 진출하는 불씨
00:16:29
역할을 했다
00:16:31
[음악]
00:16:34
자 한잔 합시다 아 맙소사 합니까 라고 생각해요 으 아 아 뭐 실행하고
00:16:43
고생도 많이 하셨네
00:16:48
사실은 낙향 을 하지 않아 줬어요 왠 영업 요소를 한 했던 것도 아니고
00:16:52
그냥 뭐 성공 말해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 었으니까
00:16:57
그러니까 전복의 그 결단이 라고 하는 것은 온전히 자기의 판단과 별거
00:17:02
아니었던 거야
00:17:05
그러니까 나중에 그 잠복 이 계획을 추진할 때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도 탑
00:17:11
비슷한 연배 고 일찍부터 알았던 사람들이에요
00:17:14
김상원 도 그렇고 김 집도 그렇고
00:17:17
그거 젊었을 때 그 선언한 결기를 본 거죠
00:17:22
[음악]
00:17:22
으
00:17:26
자네 집에 수기 있거든 부디 나를 부르실 수 초당 에 꼭 빅 얻은
00:17:33
나도 자네를 천하 온세 100년간 시름 없을 이를 의 는 구조 하노라
00:17:40
[음악]
00:17:43
won
00:17:46
1623년 3월 구성에서 정변이 일어났다
00:17:52
인조반정 으
00:17:54
광해군은 강화도로 유배 되고 응 양분이 서 인들의 지지를 받아 인조
00:17:59
임금이 되었다
00:18:02
으
00:18:02
[음악]
00:18:04
임금은 난세를 아우르고 국정을 게 역할 새로운 인재가 필요했는데 이 때
00:18:10
잠 국에 은과 하던 김 유기 주목을 받았다
00:18:14
선생은 의금부 도사 와 음성 현감을 거쳐 병자호란 직후 에 충청도 감사가
00:18:20
되었다
00:18:23
그의 나이 59세 국민들의 디테 이진 일상을 목도한 그는
00:18:28
대동법 의 확대 cm 을 자신의 정책 목표로 삼고 5
00:18:32
본격적인 대동법 논쟁을 시작한다
00:18:38
지금 굶주린 백성을 구제하는 방법에 대 돔 뽀뽀 다 온것이 없습니다
00:18:44
5
00:18:44
[음악]
00:18:48
으
00:18:51
선생은 인조 원전의 시행했던 삶도 대동 법 즉 강원 충청 전라도 의대
00:18:58
동법 이 3년 만에 실패로 끝났던 전례를 잘 알고 있었다
00:19:03
어 각 지방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못했고 시행세칙 이 미비 했으며 이를
00:19:10
틈탄 지주 들과 방나 빈 들의 극심한 반대 운동으로 삶도 대동 법은 인조
00:19:16
3년 강원도를 제외한 충청 전라도 에서 폐지되고 말았다
00:19:22
특히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세금부담이 지역에 따라 불균형 해 졌는데
00:19:27
전란의 피해를 덜 받은 충청 도민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조세를 부담하고
00:19:32
있었다
00:19:35
김유근 이를 시정하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정치적 목뼈 즉 안민 북 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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달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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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음악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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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가를 굳건히 하는 일은 인생의 안정을 강 본으로 삼습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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민생이 안정되면 인민이 정착하고 토지가 잘 경작 되어 결국 제정이 풍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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피지 고 군사력에 갖춰져 정치가 흥 할 것입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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교정이 주기 하던 해 김유근 일은 살의 나이로 우의 정인 임명됐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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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로서 제 이상의 반열에 올랐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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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음악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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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침내 정치력을 발휘할 기회가 왔지만 그의 관 즉 인기는 급격히 줄어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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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었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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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생은 대동법 시행을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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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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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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쟈 언어 백성을 구제하고 나라의 안정을 위하여 충청도와 전라도 에서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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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동법을 즉시 시행해야 하옵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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하지만 조정 신료들은 1단과 상당으로 나며 대동법 의 확대 시행을 놓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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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립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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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변사 를 중심으로 대동법 논쟁을 이어 가쓰라 아직은 시기상조라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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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중론이 지배적이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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있으며 총 도와줘 올라가면 합세를 되는 우리 백성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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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 미군 이제 마지막 카드를 꺼낼 수밖에 없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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나이가 마르니 관직에서 물러나 겠다며 남양주로 낙향 했고 8차례 의 사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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상소를 올리며 임금을 직접 설득하기 시작한 것이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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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효정의 입장에서 볼 때는 김유근 굉장히 필요한 카비 어떤 거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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근데 김용건이 물러나겠다고 얘기를 하니까 계속해서 왜 물러나겠다고 하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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계속해서 어휴 정원이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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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 들어와 달라고 이런 그때 조건을 내걸어 야 그 조건이 뭐냐면 대동법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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해라 라고 들어가는 겁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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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유근 이때 충청도에서 대동법을 시행하는 방안을 * 보게 써서 상 소문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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첨부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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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을 쓰시려고 얻은 대동법을 시행 하시고 아니면 노망난 재상으로 죄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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물을 소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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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음악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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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 6선 생이 충청도에서 우선 대동법을 시행한 뒤 그 결과를 보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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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라도로 확대 하자고 전략을 수정한 것도 이때 찝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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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음악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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산 당과의 논쟁 끝에 평 구의 낙향해 있던 김 계획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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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651년 1월 효정은 승지를 보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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국사에 대한 간절한 충정을 알았으니 조정이 나와 민생을 굳이 하라 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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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를 영의 정해질 수 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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사실상 대동법 의 확대 시행을 허락한 것이나 다름없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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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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으 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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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인 지하 만 잉 지상에 상국이 된 김유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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관직에 진출한 뒤 끊임없이 추진했던 정책들을 차곡차곡 실현해 낸 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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병자호란 때 소실 됐던 목판 활자 를 수습해 인쇄술을 재정비하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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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시 쓰였던 음력을 대신에 서양 역법 이 가미된 시험 력을 도입했는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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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는 농사 원력으로 아주 유용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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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울러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여러 차례 시도했던 동전 통영 책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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정식으로 권위의 허락을 받았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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무엇보다도 충청도 대동 법이 결실을 보았는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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토지 1 결 당 쌀 열매를 거두기 로 취존 결정돼 규정 3 년 부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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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행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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부 패했던 덩어리를 확 드러내 버리니까 안 미리 면서 재정도 된거예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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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실제로 100이면 은 기존의 거두는 게 100이면 1 20 정도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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거두고 낙 80 정도 를 깎아 줬어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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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니깐 명의 줘 근데 이식 만 갖고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왜냐하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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기존에도 그것만 찼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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80을 중간에서 없었던 거예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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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 그거 ie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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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658년 교정 9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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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유근 손자에게 대신 쓰게 하여 임금에게 마지막 상소를 올렸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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신이 만약 갑자기 죽으면 일이 중도에 배지 될까 두렵습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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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라도 대동 법은 이미 서 필욘 을 추천하여 맡겨 쓰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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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가 전라도로 떠나면서 하직인사를 오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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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를 격려하여 주십시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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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음악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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선생은 죽는 순간에도 전라도 대동법을 걱정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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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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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음악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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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유근 이 상소를 올린 역을 뒤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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서울 회원 방의 자택에서 79세 일기로 숨을 거뒀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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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음악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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으 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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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부분 법은 1608년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된 뒤 1624년 의 강원 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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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652년 에 충청도 0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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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,650 7년의 전라도의 시행 됐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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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700 훈련 10 좀 때 황 에 대해 확대 됨으로써 100년 만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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완성됐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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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기도 평택시 비전동 원소 3a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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삼남 대로가 지나가는 교통 요충지 어떤 이곳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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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을 어귀를 지키는 소박한 비가 게 하나 있습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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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동법 시행 기념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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김 유기 죽은 다음에 충 점도 양민들이 십시일반 자금을 모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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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동법 시행에 감사하는 뜻으로 이 비석을 세워 땁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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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음악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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충청도에 대동 법이 시행된 지 8년만의 김 6 선생이 돌아가셨는데 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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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월동안 대동법 의 위력을 실감한 농민들이 3 공덕의 살림이 편안해졌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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며 그 은혜에 감사하는 뜻으로 충 점도 초입에 세운 것이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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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동법 시행 b 잇다는 명칭 보다는 저 위에 쓰이는 것처럼 대독 균 역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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만 3 불 망 b 이렇게 불러야 맞습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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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시 홍문관 부제학 이였던 이민구 갔으니 비석에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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오직 김상국 이 부지런함과 과단성 으로 대동법을 시행했다고 새겨져 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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어 중 청도 백성들이 그랬다 그래요 대독 법인 시행이 되니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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뭔 얘기를 하면서도 춤을 추고 추스를 하면서도 추워졌다 돼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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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 근데 김 6 선생께서 어 곧 돌아 가지니까 충청도 백성들이 너무너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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슬퍼하면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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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가 깊 6 선생님 을 기념하고 기릴 수 있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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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석을 세워 자 어디다 세울까 아 생각하다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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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항에서 충청도로 넘어가는 마지막 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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바로 이곳에 세우면 많은 사람들이 충 정도로 너무 하면서 이 비를 볼것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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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니냐 해서 바로 이 소 사원 옆에 에 이 비를 세우게 된 거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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비석은 충남 아산과 예산 전북 익산 과 고창 그리고 팡 에도 개성 에서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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발견되는데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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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북 익산시 함라면 월에 비석에는 대동법을 시행한 김 6에 은 덕이 3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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보다 크고 바다보다 깊다고 표현돼 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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당시 대동 법이 백성들에게 얼마나 큰 환영을 받았는지를 짐작케 하는 징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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들이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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잠 곡 김 육선생은 남양주 평 그 마을의 부인 씨와 확장돼 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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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음악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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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대 동포 블 하시고 참 훌륭하신 하락은 님을 멋있는 데도 우리구 선들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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할 경우에는 버텨서 항상 취 상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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마음을 금할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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큰 개혁 일수록 오랜 기간에 걸쳐 수많은 반대를 극복해야 하며 추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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세력이 총 념 해야만 기억에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선생은 온 몸으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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입증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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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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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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성균관 유생 시절부터 선생과 절친이었던 조경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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자신이 한일이 옳다면 비록 온 세상 사람들이 비난 하더라도 조금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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동요하지 않고 자신의 이해와 영역을 돌보지 않았다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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잠 국에 유우지 명에 적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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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음악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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원래 시작 이라는 것은 그런 게 고담 주노니 아니라 현장에서 제도 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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에서 기술면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내도록 이 고민하고 실천하는 게 시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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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었거든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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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래서 이제 그런 측면에서 보면 은 아기 무기한 말로 어 정말 그 관직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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관이란 인으로 있으면서 관료로 있으면서 시약을 실천한 보인다 해서 우리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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주목을 하는 거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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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박수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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헛된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하게 개혁을 추진한 명재상 김 6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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전파를 추월하여 끈질긴 설득으로 정책 목표를 달성한 포용적 리더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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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음악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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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런 평생을 바쳐 국민 편익과 국가재정의 안정을 꾀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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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음악]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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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의 소신과 추 진격 그리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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청렴한 공직 생활을 이 시대가 요구하는 더욱 절실한 덕목이 아닌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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